감독의 데뷔작
영화 ‘유전(Hereditary)’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많은 감독들이 첫 장편에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리 애스터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공포영화 장르를 택했지만 단순한 자극적 연출이나 뻔한 공포 코드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가족 관계에 자리한 깊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유전’은 제목 그대로 ‘가족을 통해 대물림되는 것들’을 탐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유전적 질병이나 외형적 특징만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트라우마와 어두운 비밀까지 포함합니다. 이러한 주제를 데뷔작에서 다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아리 애스터는 이를 충격적이면서도 치밀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영화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단편영화 제작 시절부터 "가족을 둘러싼 불안과 심리적 공포"를 주요 주제로 삼아왔는데, 이러한 관심과 집착이 ‘유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공포의 근원이 귀신이나 괴물 같은 외부 존재가 아니라, 가족 안에서 생성되고 확대되는 내적인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독창적 접근은 공포영화 장르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데뷔작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리 애스터를 곧바로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후 ‘미드소마(Midsommar)’를 통해 한층 더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유전’을 통해 쌓아 올린 감독으로서의 자신감과 정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요컨대 ‘유전’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닌, 한 신인 감독의 과감한 선언이자 장르적 혁신을 알린 출발점이었습니다.
높은 완성도
‘유전’은 단순히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된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공포영화는 놀라게 하는 장면이나 순간적인 긴장감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압도적인 불안감을 통해 서서히 관객을 옥죄어옵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정교한 미장센과 치밀한 카메라 구도를 활용해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낯설고 기괴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인형의 집 같은 세트 디자인은 ‘인물들이 거대한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라는 메타포를 강화하며, 관객에게 심리적인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전달합니다. 또한 음악과 음향의 사용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배경음악은 극적인 장면에서만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장면에도 깔려 있어, 관객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게 만듭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토니 콜렛의 연기는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가족의 비극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현실감 넘치게 표현하면서도,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점차 붕괴되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소화했습니다. 그녀의 감정 폭발 장면은 공포를 넘어선 비극적 드라마로 관객의 마음을 압도했습니다. 이러한 연출적 세부 요소와 연기, 시각적 완성도는 ‘유전’을 단순한 장르영화로 분류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유전’은 "공포영화의 탈을 쓴 심리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공포 장르를 넘어선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유전’이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선 이유는 바로 그 속에 담긴 메시지 때문입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유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가족이란 집단 속에서 피할 수 없이 대물림되는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가족은 단순히 외부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내려온 어두운 비밀과 저주에 직면합니다. 이는 단순히 영화 속의 초자연적인 저주로만 해석되지 않고,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심리적 상처와 트라우마의 대물림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즉, 부모 세대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아픔은 자식 세대에게 고스란히 이어지며, 이는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기 어려운 굴레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잔혹한 방식으로 보여주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울림을 전달합니다.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의 파멸을 보며 단순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비슷한 굴레를 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영화는 ‘통제할 수 없는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라는 주제도 함께 다룹니다. 이는 단순히 귀신이나 악마와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뿌리와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적 현실을 상징합니다. 결국 ‘유전’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상처"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유전’은 단순히 무섭고 충격적인 영화를 넘어, 인간의 본질적 불안과 가족이라는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